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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눈(雪) 관련 한시 3수 : 택당 이식(澤堂 李植) 설(雪), 난고 김병연(蘭皐 金炳淵) 설경(雪景), 미수 이인로(眉叟 李仁老) 영설(詠雪)

 세종시에서 공동주택 건설현장 정보통신 감리업무를 수행하며 세 번째 겨울을 보내고 있다. 많은 외국인노동자들에 의해 지어지는 공동주택은 더 이상 'Made in Korea'가 아니기에 꼼꼼히 살펴보고 확인하는 일과 중 하루에 걷는 걸음수가 평균 약 만보를 훨씬 넘는다.

 퇴근 후 피곤함도 잊고 잠 못 이루는 긴긴 겨울밤 습관처럼 책상 위에 화선지를 펴고 벼루에 먹물을 붓고 적당한 농도를 맞춘 다음 먹물에 붓에 적셔 평소 마음에 담아 두었던 글귀를 써내려 간다. 표현되는 글은 붓의 종류와 크기, 발묵(潑墨)의 농도, 먹물을 받아들이는 화선지의 종류에 따라 변화를 가져오며, 글씨의 모양이 때로는 가늘고 예리하게, 굵으면서 투박하게 표현된다. 이러한 표현은 마음이 붓끝을 통해 화선지에 전해지는 과정이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것으로 사전 구도를 잡고 치밀한 계획하에 쓰는 것이 아니며 그날그날의 여건에 따라 글씨가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다음날 어제 쓴 글을 살펴보면 치졸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는 졸필에 화가 나지만 글보다 내용이 중요하기에 먼 훗날 이를 살펴보며 당시 나의 흔적을 회상하고자 함이 크기에 블로그를 통해서 유지하고 있다.

 

올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고 있다.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는 감흥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기에 눈(雪) 관련 한시 3수와 며칠 전 주변에 내린 설경을 사진과 함께 올려보았다.

 

택당 이식(澤堂 李植), 김삿갓으로 알려진 난고 김병연(蘭皐 金炳淵), 미수 이인로(眉叟 李仁老)선생은 앞서 소개하였기에 생략토록 하겠다.

 

설(雪)  - 택당 이식(澤堂 李植)

村晩初飛雪(촌만초비설) 마을의 저물녘에 처음으로 날 린 눈에

山寒密掩扉(산한밀엄비) 산 기운은 차갑고 문을 꼭꼭 닫고 있네.

滾風霏細屑(곤풍비세설) 세찬 바람에 눈 싸라기 마구 흩날리는데

承月皎淸輝(승월교청휘) 달빛을 받아 밝고도 맑게 반짝이네.

大壑松筠凍(대학송균동) 큰 골짜기에 소나무와 대나무가 얼어붙고

空林鳥雀饑(공림조작기) 빈 숲에 참새 떼가 배고픔에 굼주리누나.

區區賦鹽絮(구구부염서) 구구하게 눈을 노래한 시를 읊어 보았지만

未可語天機(미가어천기) 오묘한 자연의 섭리 어찌 말로 표현하리.

 

설경(雪景)  - 난고 김병연(蘭皐 金炳淵)

天皇崩乎人皇崩(천황붕호인황붕) 천황가 죽었나 나라임금이 죽었나

萬樹靑山皆被服(만수청산개피복) 온갖 나무와 청산이 모두 상복을 입었네.

明日若使陽來弔(명일약사양내조) 밝은 날에 해가 찾아와 조문한다면

家家檐前淚滴滴(가가첨전누적적) 집집마다 처마 끝에 고드름 눈물 뚝뚝 흘리겠네.

 

영설(詠雪 : 눈을 읊다)   - 미수 이인로(眉叟 李仁老)

千林欲瞑已棲鴉(천림욕명이서아) 온 숲은 저물어 갈까마귀 깃드는데

燦燦明珠尙照車(찬찬명주상조거) 찬란히 반짝이며 수레를 비추는 눈.

仙骨共驚如處子(선골공경여처자) 신선도 놀랄 만큼 깨끗한 순수세상

春風無計管光花(춘풍무계관광화) 봄바람도 저 눈꽃들은 어쩌지 못하네.

聲迷細雨鳴窓紙(성미세우명창지) 가랑비 소리인 듯 창호지를 울리고

寒引羈愁到酒家(한인기수도주가) 추위에 시름은 주막으로 발길 끌어

萬里都盧銀作界(만리도로은작계) 만리천지 은으로 수놓은 순백의 세상

渾敎路口沒三叉(혼교로구몰삼차) 동구 앞 세 갈래 길 하얗게 덮였네.

 

(주변설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