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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춘포 엄의길 야좌, 유산사(春圃 嚴義吉 夜坐 遊山寺)

올해 겨울 늦게 찾아온 매서운 추위로 남녘의 매화소식이 아직도 들려오지 않는다.

하지만 며칠 후면 매화 소식과 함께 복수초, 풍년화, 영춘화가 차례로 피어날 것이다. 일 년 중 가장 좋은 때를 꼽는다면 사방이 연초록으로 물들어 갈 때 진달래, 개나리, 벚꽃이 만개한 시절이라고 말한다.

영종도 공동주택건설 현장에서 정보통신 감리업무를 수행한 지 8개월이 되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6시 이전에 백운산(255m)을 향해 집을 나선다. 어제 내린 눈은 많이 녹았지만 정상 능선으로 향하는 길에는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다. 정상에는 여전히 영하 7도를 밑도는 추위로 등 하산 길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겨울 새벽등산의 묘미는 먼동이 트기 전 적당히 쌓인 눈길에 첫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가는 것이다.

오르는 길 어제보다 더 둥근 정월 대보름 달이 등산길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다.

 

함께 살펴볼 한시는 춘포 엄의길(春圃 嚴義吉) 선생의 야좌(夜坐), 유산사(遊山寺) 오언절구 2수를 소개하고자 한다. 춘포 선생에 대하여는 많이 알려진 바가 없지만 그가 남긴 시를 통하여 시서(詩書)에 능한 선비의 정신을 고졸(古拙)하게 표현하였기에 음미할수록 많은 여운이 맴돈다.

 

야좌(夜坐 : 밤에 앉아있노라니)

谷靜無人跡(곡정무인적) 고요한 산골짜기 사람자취 사리지고

庭空有月痕(정공유월흔) 텅 빈 뜰에는 달빛만 어런그리네.

忽聞山犬吠(홀문산견폐) 문득 개 짖는 소리 들리더니

沽酒客鼓門(고주객고문) 술 사든 나그네 사립문 두드리네.

 

유산사(遊山寺 : 산사를 유람하며)

紫陌三年客(자맥삼년객) 도성 길 3년을 떠돈 나그네

靑山一老僧(청산일로승) 청산에는 늙은 한 노승.

相逢談笑處(상봉담소처) 서로 만나 웃으며 담소 나누는 곳에

蘿月不懸燈(라월불현등) 담쟁이넝쿨에 달 걸려 등불이 필요치 않네.

 

춘포 엄의길(春圃 嚴義吉 ? ~ ?)은 조선 현종 때 신인으로 자 여중(蠡仲), 호는 춘포(春圃)이며, 본관은 영월(寧越)이다. 특히 글과 시에 능한 선비로 좌윤(左尹 : 조선 시대의 관직으로 태조 이래 한성부(漢城府)에 두었던 종 2품의 윤(尹)을 1469년(예종 1) 좌 ·우윤(左右尹)으로 나누어 각 1명을 두고, 장관인 판윤(判尹:정2품)을 보좌케 하였는데, 1894년(고종 31)의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겸 총관(摠管 : 요약 조선시대의 무관직으로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의 도총관(都摠管:정2품)과 부총관(副摠管:종2품)을 총칭한 말이다.)에 추증(追贈)되었다.

 

(영종 백운산에 뜬 보름달)

줌으로 당겨 담아본 보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