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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추사 김정희 시(秋史 金正喜 詩) 몇 수

추사 김정희(金秋史 正喜, 1786년 ~ 1856년)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예가 · 금석학자 · 고증학자이며 실학자이다.  충청남도 예산(禮山)출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호는 완당(阮堂)·추사(秋史)·예당(禮堂)·시암(詩庵)·과파(果坡)·노과(老果) 등 200여 가지에 이른다.

조선조의 훈척 가문(勳戚家門)의 하나인 경주 김문(慶州金門)에서 병조판서 김노경(金魯敬)과 기계 유씨(杞溪兪氏)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1819년 문과에 급제하여 암행어사·예조 참의· 병조참판·성균관 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1848년 옥사에 연루되어 9년간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1851년 친구인 영의중 권돈인의 일에 연루되어 함경도 북청(北靑)으로 또다시 유배되어 2년 만에 풀려났다.  이러한 각고의 어려움 속에서 예술의 혼은 더욱 깊어져 추사체를 완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그는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과천(果川)에 은거하면서 학예(學藝)와 선리(禪理)에 몰두하다가 1856년 71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만년에 사용한 노과(老果)는 과천에 사는 늙은이라는 의미로 세상을 뜨나기 3일 전에 남긴 봉은사의 판전(板殿) 작품에도 칠일과병중작(七一果病中作 :  71세 과천에서 병 중에 쓰다)이라고 썼다.

추사에 대하여는 많은 자료를 쉽게 찾아볼 수 있어 자세한 생애는 생략토록 하겠다. 

평소 그의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시 몇 수를 自書해 보았다.

 

칠언구(七言句)       秋史의 필의(筆意)를 담아 직접 휘호(揮毫)한 작품

정좌처다반향초(靜坐處茶半香初) 고요히 앉아 차는 반을 마셨지만 향기는 그대로이고

묘용시수류화개(妙用時水流花開) 오묘한 마음 들 때 물흐르고 꽃이 피네...

 

위 절구는 추사와 초의선사간 차를 주제로 교류하는 과정에서 추사가 남겼다고 전해지나 확실치는 않다. 마지막 수류화개(水流花開)는 中國 宋나라 황정견(黃庭堅)의 만리청천도(萬里晴川圖)의 화제(畵題)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어서 예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만리청천(萬里靑天) 더 넓은 푸른 하늘에

운기우래(雲起雨來) 구름이 일고 비오는데

공산무인(空山無人) 빈산에는 사람 하나 없어도

수류화개(水流花開) 꽃은 피고 물은 흐르네       - 산곡 황정견(山谷 黃庭堅)

 

실제(失題 : 제목을 잃어버리다)

군방조간호(群芳照澗戶) 시냇가 집 꽃들은 만발하고

조일편하홍(朝日片霞紅) 아침해와 조각 노을이 붉은데

임금탁화조(林禽啄花藻) 숲 속 새들이 쪼는 꽃잎이

시시낙주중(時時落酒中) 이따금 술잔에 떨어지네...

(농가의 평화로운 정경을 묘사한 시)

  

과우즉사(果寓卽事 : 과천에 살면서)  

정반도화읍(庭畔桃花泣) 뜰 앞 복사꽃이 울고 있네

호위세우중(胡爲細雨中) 어찌 가랑비 때문이리

주인침병구(主人沈病久) 주인은 오랫동안 병들어 누워있어

불감소춘풍(不敢笑春風) 봄바람에 웃을 수 없어서라네.

(만년에 지난날을 돌이켜 보며 병든 몸으로 화사한 봄날 복사꽃을 바라보며 읊은 시)

 

도망(悼亡 : 망자를 추도함)

나장월모송명사(那將月姥訟冥司) 어쩌면 달 노파 모시고 염라전에 애원하여

내세부처역지위(來世夫妻易地爲) 내세에는 부부 서로 바꿔 태어나

아사군생천리외(我死君生千里外) 나 죽고 그대 천리 밖에 살면서

사군지아차심비(使君知我此心悲) 이 마음 슬픔을 그대가 알게 하리라.

(제주도 유배시절 아내의 사별 소식에 비통해하며 지은 시)

 

만년작시(晩年作詩)

독유일주옥수록(禿柳一株屋數綠) 한그루 오랜 버들 두어 칸 초가집에

옹파백발양소연(翁婆白髮兩蕭然) 백발 노부부는 둘 다 쓸쓸한데

미과삼척계변로(未過三尺溪邊路) 석자 좁은 시냇가 길 넘어보지 못하고서

옥촉서풍칠십년(玉薥西風七十年) 옥수수 서풍 맞으며 칠십 년을 살았다네... 

(함경도 북청 유배시절 백발노인 내외가 옥수수밭 일구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읊은 시)

 

중양황국(重陽黃菊 : 중양절 노란 국화) 

황국배뢰초지선(黃菊蓓蕾初地禪) 처음 땅에 터를 닦은 노란 국화

풍우리변탁정연(風雨籬邊託靜椽) 비바람 막아주는 울타리에 고요히 의탁했구나

공양시인수말후(供養詩人須末後) 시인은 마지막까지 베풀어 가꾸니

잡화백억임거선(襍花百億任渠先) 수많은 꽃 중에서 너를 먼저 꼽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