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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남호 정지상 시선(南湖 鄭知常 詩選) 몇 수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역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당시 시대적 배경에 어쩔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인물이 너무나 많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 신분의 벽, 불의에 항거한 수많은 이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대표적인 사례로 27세 나이로 요절한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 노비 시인 정초부(鄭樵夫. 1714~1789) 등이 있다. 묘청의 난에 연루되어 생을 마감한  남호 정지상 또한 이와 같음이라. 남호가 남긴 시는 20 여수에 불과하지만 후세 문인들은 그 천재성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교과서에 실려 널리 알려진 시 송인 등 몇 수를 살펴보고자 한다.

 

남호 정지상(南湖 鄭知常. ? ~ 1135) 고려 전기 좌정언(左正言), 좌사간(左司諫) 등을 역임한 관리이자 문신으로 서경(西京 : 지금의 평양)에서 태어났다. 초명은 정지원(鄭之元). 호는 남호(南湖)이며, 출생연도에 대한 기록은 없다.

1114년(예종 9) 과거에 급제하였다.

1127년 좌정언(左正言)으로 이자겸(李資謙)을 제거한 공을 믿고 발호(跋扈 : 권세나 세력을 제멋대로 부리며 함부로 날뜀)하는 척준경(拓俊京)을 탄핵해 유배하도록 하였다.

1129년 좌사간(南湖)으로 기거랑(起居郎) 윤언이(尹彦頤) 등과 시정(時政)의 득실을 논하는 소(疏)를 올리니 왕이 받아들였다. 음양비술(陰陽祕術 : 천문, 역술, 복서(卜筮), 지상(地相) 등을 상고하여 길흥을 점치는 술법) 에도 관심이 많아 묘청(妙淸)·백수한(白壽翰) 등과 함께 삼성(三聖)으로 불렸다.

 

1132년에 기거주(起居注 : 중서 문하성에 속한 관직)로서 윤언이가 강론한 역경(易經)의 건괘(乾卦)에 대하여 토론하였다. 이듬해에도 기거 주로서 김부식이 강론한 주역(周易)과 상서(尙書)에 대해서 토론하였다.

서경 출신으로 서울을 서경으로 옮길 것을 주장해, 김부식(金富軾)을 중심으로 한 유교적·사대적인 성향이 강하던 개경(開京 : 송도, 개성) 세력과 대립하였다. 서경을 거점으로 묘청 등이 난을 일으키자, 적극 가담해 금나라를 정벌하자고 주장하며 칭제건원(稱帝建元 : 왕을 황제가 칭하고 연호를 사용하자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개경 세력의 김부식이 이끄는 토벌군에게 패해 개경에서 참살(斬殺)되었다.

정지상은 정치인으로서만이 아니라, 뛰어난 시인으로서 문학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정지상의 시재(詩才)는 이미 5세 때에 강 위에 뜬 해오라기를 보고 “어느 누가 흰 붓을 가지고 乙자를 강물에 썼는고(何人將白筆 乙字寫江波).”라는 시를 지었다는 일화가 야사로 전해올 만큼 뛰어났다.

1130년 지제고(知制誥)로 왕명에 따라 곽여(郭輿)를 위해 산재기(山齋記)를 짓기도 하였다. 이러한 시재로 고려 12 시인 중의 하나로 꼽혔다. 노장사상에 심취했으며, 역학(易學)·불교(佛敎)에도 조예가 깊었다. 또한 그림·글씨에도 능통했는데, 특히 사륙변려체(四六騈儷體 : 중국의 육조와 당나라 때 성행한 한문 문체)를 잘 썼다고 한다.

작품으로는 동문선에 신설(新雪)·향연치어(鄕宴致語)가, 동경잡기(東京雜記)에 백률사(栢律寺)·서루(西樓)등이 전하며, 정사간 집(鄭司諫集)·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등에도 시 몇 수가 실려 있다.

 

송인(送人 : 님을 보내며), 별시제(別詩題) : 송우인, 대동강(送友人, 大同江)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비 갠 긴 둑엔 풀빛이 짙어 가는데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남포에서 임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대동강 물은 어느 때 마르려는지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해마다 이별 눈물 푸른 강물에 더해지네

 

또 다른 시제 송인(送人)

庭前一葉落(정전일엽락) 뜰 앞에 한 잎 떨어지니

床下百蟲悲(상하백충비) 평상 밑 온갖 벌레 슬피 우네

忽忽不可止(홀홀불가지) 갑자기 떠남을 말릴 수 없지만

悠悠何所之(유유하소지) 하염없이 어디로 가는가

片心山盡處(편심산진처) 산이 끝난 곳에는 한 조각 마음

孤夢月明時(고몽월명시) 달 밝을 땐 외로운 꿈을 꿀 텐데

南浦春波綠(남포춘파록) 남포에 봄 물결 푸르러지면

君休負後期(군휴부후기) 그대여 뒷 기약 어기지 마시게

 

단월역(團月驛 : 충주목(忠州牧) 남쪽 10리쯤에 있고, 역 남쪽에 계월루(溪月樓)가 있음)

飮闌欹枕畫屛低(음란의침화병저) 취하토록 마시고 그림 병풍 아래 베개 베고 누웠다가

夢覺前村第一鷄(몽각전촌제일계) 앞 마을의 첫 닭 소리에 꿈을 깨네

却憶夜深雲雨散(각억야심운우산) 문득 생각하노니, 밤 깊어 운우가 흩어진 뒤

碧空孤月小樓西(벽공고월소루서) 푸른 하늘 외로운 달이 작은 누각 서쪽에 걸렸던 것을

 

서도(西都 : 평양에서..)

紫陌春風細雨過(자맥춘풍세우과) 번화한 거리 봄바람 불고 가랑비 내리고

輕塵不動柳絲斜(경진부동유사사) 티끌도 일지 않고 실버들은 비껴 나네

綠窓朱戶笙歌咽(녹창주호생가열) 푸른 창 붉은 문에서 노랫소리 들려오니

盡是梨園子弟家(진시리원자제가) 이곳이 곧 *이원 자제의 집이런가

*이원자제(梨園子弟 : 당 현종 때 이원 궁중의 가무 예인을 통칭)

 

취후(醉後 : 술에 취해)

桃花紅雨鳥喃喃(도화홍우조남남) 복사꽃 붉은 비처럼 휘날리고 새들이 지저귀니

繞屋靑山間翠嵐(요옥청산간취람) 집을 둘러싼 청산에는 푸른 기운 아른거리네

一頂烏紗慵不整(일정오사용부정) 이마 한편 오사모 게을러 바로 쓰지 않고

醉眠花塢夢江南(취면화오몽강남) 취하여 꽃핀 언덕에 누워 강남을 꿈꾸네

 

이 시는 술에 취한 시인의 취한 모습과 그 몽상적 분위기를 잘 살려 쓴 작품이다.

구성은 늦봄의 화사한 정경을 묘사한 전반부와 그러한 상황에서 취해 흥에 겨워하는 작자의 모습을 형용한 후반부로 되어 있다. 복사꽃이 떨어지는 것이 마치 붉은 비가 내리는 것 같은 봄, 새들은 흥에 겨워 지저귀고 있고 집 주위는 아지랑이가 여기저기서 피어오르고 있다. 이런 때 흥에 겨워 오사모(烏紗帽 : 관복을 입을 때 쓰는 사(紗)로 만든 검은 빛깔의 벼슬아치 모자)를 이마 한 귀퉁이에 비스듬하게 쓰고 술에 취해 꽃핀 언덕에 누워 강남땅에 노니는 꿈을 꾸고 있다.

 

보한집(補閑集 : 고려 후기 문신 최자(崔滋)가 이인로의 파한집(破閑集)을 보충하여 1254년에 발간한 서화집)에서는 "이 시야말로 그림으로 삼아 상상해 볼 수 있다(此詩可作畵圖看也(차시가작화도간야))."라고 평했고, 청창연담(晴窓軟談 : 조선 중기 신흠이 지은 시 비평집)에서는 "놀랍고 빼어나며 수사가 아름답다(驚拔藻麗 : 경발조려)."라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