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낮 햇볕은 따갑지만 조석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서늘함을 느끼며, 들녘은 서서히 옅은 황금색으로 출렁이는 풍경이 초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쉽게 잡힐 듯 예상했던 코로나와 장기전을 치르는 동안 마스크 착용은 필수가 되었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비대면을 통한 일상들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며, 이전과 조금 다르게 새로운 문화가 자리 잡을 것이다. 영세 자영업자나 소상공에 종사하는 서민들의 고충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와중에도 추석명절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집안은 종중(宗中)의 결정에 따라 올해 벌초는 전문가에게 위탁하고 묘제는 고향에 계신 소수 몇 분들만 모여 간단하게 지내기로 했다. 매년 선산에 선영(先塋)을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도 있지만 종중의 결정을 수용하기로 하였으며, 코로나 사태가 안정이 되면 시간을 내어 고향 선영을 돌아볼 계획이다.
소개할 이백(李白)의 시 2수는 황학루송맹호연지광릉(黃鶴樓送孟浩然之廣陵)와 춘야낙성문적(春夜洛城聞笛)이다. 꽃 피는 춘삼월에 이별의 아쉬운 정을 나누고자 했던 시인의 마음이 애잔하게 남아있는 시를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황학루송맹호연지광릉(黃鶴樓送孟浩然之廣陵 : 황학루에서 맹호연을 광릉으로 보내며..)
故人西辭黃鶴樓(고인서사황학루) 옛 친구는 서쪽으로 황학루에서 이별을 고하고
煙花三月下揚州(연화삼월하양주) 꽃피는 삼월에 양주로 내려간다
孤帆遠影碧空盡(고범원영벽공진) 외로운 돛단배 멀어져 푸른 하늘로 사라지고
唯見長江天際流(유견장강천제류) 보이는 건 하늘에 맞닿아 흐르는 장강뿐
제목은 '황학루에서 광릉으로 떠나는 맹호연을 보내며'라는 뜻으로, 칠언절구(七言絶句)의 송별시(送別詩)이다. 황학루는 지금의 후베이성(湖北省) 우창(武昌) 서남쪽 양쯔강(揚子江) 강가에 있는 누각으로, 선인(仙人)이 노란 귤 껍질로 만든 학이 진짜 학이 되어 선인을 태우고 날아갔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이백(701~762)은 쓰촨을 떠나 중원을 주유하다가 20대 후반에 12세 연상인 맹호연(689~740)과 교분을 맺었다. 이때 맹호연은 이미 시명(詩名)을 날리고 있었고 이백은 그를 위하여 증맹호연(贈孟浩然)이라는 시를 짓기도 하였다. 다시 세월이 흘러 739년, 이백은 황학루에서 우연히 맹호연을 만났다. 당시 맹호연은 광릉, 곧 지금의 양저우(揚州)로 가려던 참이었으므로 이백은 이 시를 지어 이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황학이 날아가버린 것처럼 옛친구도 작별을 고하여 떠나는데, 꽃 피는 계절을 함께 즐기지 못하여 더욱 아쉽다. 옛친구를 실은 배는 점점 멀어져 마침내 수평선에 닿은 푸른 하늘로 사라져 버리고, 눈앞에는 짧은 인생의 이별 같은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장강(양쯔강)이 무심하게 흐르고 있다. 단 4구절로 석별의 정을 심원하게 드러낸 천고(千古)의 절창(絶唱)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공교롭게도, 황학이 선인을 태우고 날아간 뒤 다시 돌아오지 않은 것처럼 맹호연은 이백과 헤어진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
춘야낙성문적(春夜洛城聞笛 : 봄밤에 낙양성에서 피리 소리를 듣다)
誰家玉笛暗飛聲(수가옥적암비성) 누가 옥피리를 저리도 은근하게 부는고
散入春風滿洛城(산입춘풍만낙성) 봄바람에 실리어 낙양 성안에 가득 차는구나
此夜曲中聞*折柳(차야곡중문절류) 오늘 밤 들리는 저 ‘절양류’의 가락을 듣고는
何人不起故園情(하인불기고원정) 그 누가 고향 그리는 정을 품지 않으랴
*折柳 : 악곡 이름인 折楊柳(절양류)로 강가의 버들가지를 꺾어 떠나는 손님에게 주는 이별의 정경을 노래한 악곡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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