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춥지도 덥지도 않은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부른다. 사람이 살기 좋은 최적의 온도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나의 경우는 14도에서 24도 사이가 적당한 것 같다. 5월 중순에 접어드는 이 시기는 아침에는 조금 쌀쌀한 듯 하지만 낮에는 따뜻하여 활동하기에 불편함이 없고 쾌적한 환경이 주변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른봄에 피는 꽃들이 지고 나면 아카시아가 후속으로 피어나고 송홧가루가 온 산을 흩뿌리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5월의 솔바람을 팔고 싶으나 그대들 값 모를까 그게 두렵다"는 몽암악 선사(蒙菴嶽 禪師)의 송(頌)이 떠오른다.
몽암악 선사(蒙菴嶽 禪師)의 송(頌) 오월의 솔바람(본시산중인 本是山中人) (tistory.com)
몽암악 선사(蒙菴嶽 禪師)의 송(頌) 오월의 솔바람(본시산중인 本是山中人)
며칠 열대야로 잠을 못 이룬 적이 있다. 이처럼 더운 날을 暴炎, 炎天, 孟夏 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한두 주만 지나면 무더위도 서서히 막을 내릴 것이다. 이 또한 어김없이 이어져 온 자연의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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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연초록에서 짙게 변해가는 청산을 바라보며 천금 같은 하루의 시간이 쏜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함께 살펴볼 한시는 월봉(月峰)선생의 이천동각(利川東閣)과 주황경문(酬黃景文) 2수와 주변에서 펼쳐진 꽃들을 사진으로 담아보았다.
이천동각(利川東閣 : 이천의 동쪽 누각에서)
麥熟南州雨未休(맥숙남주우미휴) 보리 익는 남쪽 고을에 비 그치지 않고
綠槐門巷澗爭流(녹괴문항간쟁류) 푸른 느티나무 마을 길에 개울물 콸콸 흐르네.
山僧去後午窓靜(산승거후오창정) 산승이 간 후에 한낮의 창이 고요한데
夢落烟波隨白鷗(몽락연파수백구) 꿈속에서 안갯속 백구와 노니는구나.
이 시는 월봉시집(月蓬詩集)에 실려 있는 시로 경기도 이천에 머물며 동쪽 누각에서 초여름 비 오는 날의 한가한 분위기를 읊은 칠언절구다. 허균(許筠)은 “글자마다 모두 옛 투에서 나왔는데 정돈되어 절로 오묘하다.(字字皆出古套 整整自妙)”라고 비평하였다. 고투(古套)는 이백(李白)과 맹교(孟郊), 고적(高適) 등 당나라 시인들과 소동파(蘇東坡)의 시구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주황경문(酬黃景文 : 황경문에게 보냄)
葉雨西廂夜(엽우서상야) 잎에 밤비 떨어지는 서쪽 곁채에
殘釭夢覺時(잔공몽각시) 희미한 등잔불 꿈을 깨는 때.
浮榮不在念(부영부재념) 뜬 구름 같은 영화는 생각에 없고
遠別自生悲(원별자생비) 먼 이별에 슬픔이 절로 인다.
錦瑟消年急(금슬소년급) 좋은 시절 어느덧 지나가고
金屛買笑遲(금병매소지) 금빛 병풍에 기녀 놀이는 오래되었다.
江南一片恨(강남일편한) 강남의 한 조각 한을
唯許故人知(수허고인지) 오직 옛 친구만이 알아주겠지.
이 시는 지천 황정욱(芝川 黃廷彧,1532∼1607 조선 중기에, 대제학, 예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자는 경문(景文)이다.)에게 시를 받고 답시(答詩)로 준 오언율시다. 옛 친구에게 쓸쓸히 늙어가는 자신의 처지를 토로하고 있다. 수련(首聯 : 한시(漢詩)의 율시(律時)에서, 첫째 구(句)와 둘째 구를 이르는 말)과 함련(頷聯 : 한시(漢詩)의 율시(律詩)에서, 셋째 구(句)와 넷째 구를 이르는 말), 경련(頸聯 : 다섯째 구(句)와 여섯째 구)과 미련(尾聯 : 일 일곱째 구(句)와 여덟째 구)으로 현재의 상황, 헛된 영화, 지난날의 회상, 친구와의 교감 등을 파노라마와 같이 흘러간 자신의 옛 영욕(榮辱)을 풀어쓴 시다.
월봉 유영길(月峰 柳永吉. 1538 ∼ 1601)은 조선 중기에, 연안부사, 병조참판,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자는 덕순(德純), 호는 월봉(月蓬)이며 본관은 전주(全州)로 영의정 유영경(柳永慶)의 형이다.
1559년(명종 14) 별시 문과에 장원급제(壯元及第) 하였으며, 부수찬(副修撰)·정언(正言)·병조좌랑·전적(典籍)·헌납(獻納) 등을 거쳐 1565년에 평안도도사가 되었다. 그러나 권신 이량(李樑)에게 아부하였다는 탄핵을 받아 이듬해에 파직되었다. 1589년(선조 22) 강원도관찰사·승문원제조를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강원도관찰사로 춘천에 있었다. 이때 조방장 원호(元豪)가 여주 벽사(甓寺)에서 왜군의 도하를 막고 있었는데, 격서(檄書)를 보내어 본도로 호출함으로써 적의 도하를 가능하게 하는 실책을 범하였다. 1593년 도총관·한성부우윤을 역임하고, 다음 해 진휼사(賑恤使)가 되었으나 언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호군·연안부사가 되고, 2년 뒤 병조참판·경기도관찰사를 역임하였으며 1600년 예조참판으로 치사(致賜)하였다. 시문에 능하였다. 저서로는 월봉집(月峰集)이 있다.
(주변에 펼쳐진 꽃들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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