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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당 시인 전기 모춘귀고산초당(唐 詩人 錢起 暮春歸故山草堂)

온통 코로나 뉴스가 지면을 장식하지만 계절의 변화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24절기 중 소만(小滿)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의 역발상적 사고를 살펴보면 난개발과 색다른 식탐에서 비롯된 인간이 받아야 할 당연한 업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주 먼 훗날 또 다른 고등 개체가 나타나 지구를 점령한다면 현재의 인간을 가리켜 “유일하게 자연환경을 파괴한 동물”이라는 수식어가 반드시 들어가리라 확신한다. 코로나 발생 반년 동안 인간의 활동제약에 따라 대기질이 개선되고 도심에 야생동물이 출몰하는 등 생태계가 호전되어 가는 모습을 확연하게 본다는 것은 인간이 자연에 저지른 원죄가 얼마나 엄중한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시각이 아닌 자연에서 코로나에 대한 역할을 대변한다면 필요악이 아닌 필요 선임에 틀림없으리라.

 

소개하고자 하는 전기(錢起)의 한시는 늦은 봄 풍진 세상을 뒤로하고 고향에 유거(幽居) 하기 위해 초당으로 돌아와 지은 시로 나를 위해 그윽한 대나무 숲이 맑은 그림자를 만들어 반기는 모습을 표현한 수작 시(秀作詩)다.

 

전기(錢起 710년 추정 ~ 780년 추정) 중당(中唐)의 대표적 학자이자 시인으로 절강(浙江) 오흥(吳興) 사람. 자는 중문(仲文)이다. 시에서 낭사원(郎士元)과 이름을 나란히 해 “앞서 심ㆍ송(심전기沈佺期와 송지문宋之問)이 있고, 뒤로 전ㆍ낭(전기 錢起 와 낭사원 郎士元)이 있다.(前有沈宋 後有錢郞)”는 소리를 들었다. 현종(玄宗) 천보(天寶) 9년(751) 진사시험에 급제했고, 성당(盛唐)에서 중당(中唐)으로의 전환기였던 대력(大曆) 연간에 태청궁사(太淸宮使)와 한림학사가 되었다. 청신수려(淸新秀麗)한 시로 대력십재자(大曆十才子)의 필두로 칭송받았다.

그가 지은 성시상령고슬(省試湘靈鼓瑟) 시 중 2구 “노래가 끝나도 사람은 보이지 않고, 강 너머로 봉우리들만 푸르네.(曲終人不見 江上數峰靑)”가 세상에 크게 회자되었다. 숙종(肅宗) 건원(乾元) 연간에 남전현위(藍田縣尉)를 지냈고, 왕유(王維)와 교유했다. 사훈원외랑(司勳員外郞)과 사봉낭중(司封郎中)을 지냈고, 고공낭중(考功郎中)까지 올라, 세상에서는 ‘전고공(錢考功)’으로 불렸다. 저서에 전고공집(錢考功集) 10권 외에 부(賦) 13편이 남아 있다.

 

暮春歸故山草堂(모춘귀고산초당 : 늦은 봄에 고향의 초당에 돌아오다)

谷口春殘黃鳥稀(곡구춘잔황조희) 골짜기 어귀 봄은 저물어 꾀꼬리 드물고

辛夷花盡杏花飛(신이화진행화비) 백목련 모두 지고 살구 꽃잎 날리는구나

始憐幽竹山窓下(시련유죽산창하) 산창 아래 사랑스러운 그윽한 대숲이여

不改淸陰待我歸(불개청음대아귀) 맑은 그늘 바꾸지 않고 나 돌아오기 기다렸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