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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무명자 윤기 전가추사(無名子 尹愭 田家秋事)

입동을 며칠 앞둔 요즘은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따스한 가을 날씨다.

들녘에는 막바지 가을걷이에 여념이 없고 내가 가꾸는 텃밭도 된서리가 내리기 전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가을의 정점이다.

속개하고자 하는 윤기의 전가추사 시는 5언 절구 6 수로 200여 년 전 평화로운 농촌의 일상적 가을걷이 모습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풍경을 멋진 서정적 시구(詩句)로 읊어 내어 마치 소싯적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농가의 모습을 아련히 떠올리게 하는 시를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윤기는 앞서 ‘독서의 변’에서 잠깐 소개한 바 있다.

 

전가추사(田家秋事 : 농가의 가을걷이)

 

其一.

守禾兒走野(수화아주야) 볏단을 지키려고 아이들은 들로 달려가고

春米婦過隣(춘미부과린) 쌀을 찧으려 아낙네는 이웃을 찾아가네

老翁隨月色(노옹수월색) 늙은이는 달빛 머무는 곳에서

䛬索備束薪(도색비속신) 땔감을 묶을 새끼줄을 꼬고 있네

 

其二.

黃牛臥齕草(황우화흘초) 누른 소는 엎드려서 되새김질하고

白狗坐羡飯(백구좌이반) 흰 개는 앉아서 밥 먹는 사람 부러워하네

磨䥥白如霜(마렴백여상) 낮 날을 서리처럼 하얗게 갈고 있고

蒼茫野色遠(창망야색원) 저 멀리 들에 경치는 아득하기만 하구나

 

其三.

長男耕麥去(장남경맥거) 맏아들은 보리밭 갈러 가고

中男載禾來(중남재화래) 둘째 아들은 볏단을 실어오네

穉兒絶田水(치아절전수) 어린아이는 밭 물을 막고

漉得白小廻(녹득백소회) 물 퍼내 물고기 잡고 돌아오네

 

其四.

少婦庭鑿米(소부정착미) 작은 며느리는 마당에서 쌀을 쓿고

長婦井垂瓢(장부정수표) 맏며느리는 우물에 두레박을 드리우네

幼女止兒哭(유녀지아곡) 어린 여아는 우는 아이를 달래며

籬外有斑猫(이외유반묘) 울타리 밖에 살쾡이가 있다고 말하네

 

其五.

秋來苦無暇(추래고무가) 가을이 오니 괴롭게도 쉴 틈이 없어

晨起到深夜(신기도심야) 새벽에 일어나 깊은 밤까지 일하네.

西岸收蕎豌(서안수교완) 서쪽 언덕에서는 메밀과 완두를 수확하고

東陂穫䆉稏(동파확파아) 동쪽 방죽에서는 벼를 거두는구나.

 

其六.

天雨不出野(천우불출야) 비 내리면 들에 나가지 않고

在家還多事(재가환다사) 집에 있어도 오히려 일이 많네

老翁織蒿篅(노옹직호천) 노인은 볏짚으로 *멱둥구미를 짜고

少年爲草履(소년위초이) 젊은이는 짚신을 삼는구나

*멱둥구미 : 짚으로 둥글고 울이 깊게 결어 만든 그릇으로 주로 곡식이나 채소 따위를 담는데 쓰인다.

 

무명자 윤기(無名子 尹愭 1741 ~ 1826)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로 자는 경부(敬夫), 호는 무명자(無名子)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아버지는 윤광보(尹光普)이며, 어머니는 원주원씨(原州元氏)로 원일서(元一瑞)의 딸이다. 이익(李瀷)을 사사(師事)하였다.

1773년(영조 49)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20여 년 간 학문을 연구하였다. 1792년(정조 16)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를 초사(初仕 : 과거에 급제한 뒤 천거되어 처음으로 하는 벼슬)로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 예조·병조·이조의 낭관(郎官 : 조선시대 정 5품 통덕랑 이하의 당하관을 통틀어 이르던 말)으로 있다가 남포현감(藍浦縣監)·황산찰방(黃山察訪)을 역임하였다.

이후 다시 중앙에 와서 정조실록(正祖實錄)의 편찬관을 역임하였다. 벼슬이 호조참의(戶曹參議)에까지 이르렀다. 저서로 무명자집(無名子集) 20권 20 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