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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求古深論

두보 시 빈교행(杜甫 詩 貧交行)

두보(杜甫.712~770) 성당(盛唐)의 대시인(大詩人), 詩聖(시성)으로 자는 子美(자미), 호는 소릉(少陵, 杜陵(소릉)이며 시호는 문진(文眞)이다.

변함없이 도타운 우정관계를 관포지교(管鮑之交)라 하는데 두보의 시 빈교행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요즘의 세태는 교우(交友)함에 있어 자신의 유불리(有不利) 상황에서 소중한 관계를 쉽게 흙먼지 털어버리듯 미련 없이 버리고 만다. 빈교행은 우정의 바뀜을 불과 네 구절로 설파한 명시로 평가받고 있다. 잠시 진정한 우정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며, 교훈적 의미로 새겨 보고자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빈교행(貧交行 : 가난한 사귐의 노래)

飜手作雲覆手雨(번수작운복수우) 손바닥 뒤집으면 구름이요 엎으면 비가 되니

紛紛輕薄何須數(분분경박하수수) 이처럼 변덕스러운 무리들을 어찌 다 헤아리리오

君不見管鮑貧時交(군불견관포빈시교)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관중과 포숙아의 가난했을 때의 사귐을

此道今人棄如土(차도금인기여토) 요즈음 사람들은 이 도리를 흙같이 버리고 만다네

 

관포빈시교(管鮑貧時交) : 관중과 포숙아의 가난했을 때의 사귐. 관중(管仲, 이름은 이오(夷吾))과 포숙아(鮑叔牙, 이름은 숙(叔숙))는 제(齊) 나라 사람으로, 두 사람이 젊었을 때 남양(南陽)에서 장사를 했는데, 이익 분배를 관중은 속여 포숙아보다 항상 많이 했음. 포숙아는 ‘관중에게는 모친이 있고 가난하기 때문’이라 생각하여 그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후에 포숙아는 제의 공자 소백(小白 : 춘추시대 제나라의 제후로 훗날 환공(桓公)이 됨)을 섬기고 관중은 소백의 형 규(糾)를 섬겼음. 소백이 즉위하여 환공(桓公)이 되자 규는 죽음을 당하고 관중은 옥에 갇혔는데, 포숙아는 관중을 등용해 쓰자고 환공에게 건의해 그 건의가 받아들여져 관중은 재상으로 정치에 힘써 환공이 그의 덕택으로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었음. 관중은 “나는 지난날 가난하게 살 때 포숙아와 장사를 했는데, 내 몫 이익을 많게 해도 포숙아는 나를 탐하는 자라 말하지 않았고, 세 번이나 벼슬길에 올랐다가 주군(主君)에게 추방된 일이 있어도 포숙아는 나를 불초(不肖)하다고 하지 않았다. 또 세 번이나 전쟁터에 나갔다가 번번이 패주 했지만 포숙아는 나를 비겁하다고 말하지 않았으니, 나에게 노모가 계심을 알기 때문이었다.”라고 말하고 아생자부모 지아자포자야(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 : 나를 낳은 분은 부모시지만, 나를 참으로 이해해 주는 이는 포숙아다.)”라 했다. 사기 관안열전(史記 管晏列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