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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사위와 장인이 주고받은 편지 : 이목 기처부유장경(李穆 寄妻父劉長卿), 유장경 수이목견기(劉長卿 酬李穆見寄)

정보통신의 급격한 발달로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다. 이런 획기적인 통신수단의 발달의 역사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북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통신수단의 하나였다. 진군(進軍)을 알리는 군대의 북소리는 청각을 이용하기 때문에 근거리에 유효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발달한 것이 시각적 활용수단으로 횃불과 연기를 이용한 봉수대(烽燧臺)다. 봉수는 당시 원거리 통신수단으로 주로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주로 하의상달(下意上達)을 목적으로 한 수단이었으나 비가 오거나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무용지물이었다.

봉수 신호의 방법은 횃불의 개수에 따라 국경의 위급함을 알리도록 했는데 1거(炬), 곧 불꽃이 하나 오르면 별일이 없다는 의미이고 2거는 외적(外賊)이 해상이나 국경에 나타났다는 뜻이고, 3거는 우리 국경에 가까이 다가왔다는 뜻이며, 4거는 우리 병선(兵船)이 적과 접전(接戰)하거나 외적이 국경을 침입할 때, 그리고 5거는 적이 우리 땅에 상륙하거나 국경을 침범한 적과 접전 중임을 뜻했다.

비교적 간단한 방법이지만 기후의 영향과 간단한 정보만 전달하기에는 많은 관리인력이 필요했고 오류 또한 많이 발생했다. 이를 개선하고 상의하달(上意下達)의 원활성과 정확한 지시와 정보를 담아 보낼 수 있는 제도가 파발(擺撥)이다. 즉 사람이 달려가서 전하는 보발(步撥)과 말을 이용하여 전하는 기발(騎撥) 방법인데 상황의 위급함에 따라서 방울을 달았다. 방울 셋을 달면 초비상, 긴급 상황을 뜻하는 3현령(3懸鈴)이었고, 그다음으로 방울 둘을 다는 2현령, 하나를 다는 1현령으로 구분했다. 기발을 이용하여 정보가 한양에서 북발(北撥 : 한양에서 경흥(양강도)까지)까지 12일, 남발(南撥 : 한양에서 동래까지)까지는 7일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파발은 봉수에 비해서 전달 속도가 느리고 운영 경비가 많이 드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날씨의 영향이 적고, 문서로 전달되어 내용이 정확했고 보안유지의 장점이 있었다. 파발은 조선 후기까지 역참(驛站), 봉수(烽燧)와 함께 국가기간통신망 역할을 해 왔으나, 1885년 전신과 전화 등 근대적 통신수단이 도입되면서 고종 31년(1895년) 갑오경장 때 철폐되었고 이듬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우리나라에서는 1855년 2월 28일 처음으로 서울과 인천 간에 전신(電信)이 설치되었다. 같은 해 10월 18일에는 서울에서 평안북도 의주에 이르는 서로전신선(西路電信線)이 개설되어 비로소 인천, 서울, 의주를 잇는 전신 업무가 개시되었다.

이후 전화의 상용화와 교환기술의 점진적인 개발과 함께 유선에서 무선으로 연결되는 인터넷과 네트워킹 기술의 비약적인 발달로 현재의 편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함께 살펴볼 한시는 1300여 년 전 당(唐) 시인 유장경(劉長卿, 725? ~ 786?)과 사위인 이목(李穆)과 주고받은 시를 통해 사위의 방문을 기다리며 장인의 설레는 기쁜 심정이 정겹게 담겨있기에 이를 행서체로 자서 해 보았다. 당시 주고받은 편지는 인편 또는 파발로 전해졌을 것이다.

 

기처부유장경(寄妻父劉長卿 : 장인 유장경에게 부치다)  - 이목(李穆)

處處雲山無盡時(처처운산무진시) 곳곳에 구름 산 끝없이 펼쳐져 있고

桐廬南望轉參差(동려남망전참차) 동루에서 남쪽을 바라보니 아득히 이어진 능선.

舟人莫道新安近(주인막도신안근) 뱃사공은 신안(장인이 사는 곳)이 가깝다고 말하지 말게

欲上潺湲行自遲(욕상잔원행자지)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 거슬러 가려하니 배는 더딜 뿐.

 

수이목견기(酬李穆見寄 : 사위 이목의 시에 화답하여 부치다)  - 유장경(劉長卿)

孤舟相訪至天涯(고주상방지천애) 외로운 배로 찾아와 하늘 끝까지 이르려면

萬里雲山路更賖(만리운산로갱사) 만리 구름 낀 산에 길 또한 아득한데.

欲掃柴門迎遠客(욕소시문영원객) 멀리서 온 손님 맞으려 사립마당 쓸자니

靑苔黃葉滿貧家(청태황엽만빈가) 푸른 이끼 낙엽만 가난한 집에 가득하네.

 

유장경(劉長卿, 725? ~ 786?)은 당(唐) 나라 때의 관리이자 시인으로 선성(宣城) 출신이다. 자는 문방(文房)이며, 천보(天寶) 연간(年間: 742-756)의 진사(進士) 출신으로 벼슬은 감찰어사(監察禦史), 장주현위(長洲縣尉), 남파위(南巴尉), 전운사판관(轉運使判官), 지회서(知淮西), 악악전운(鄂嶽轉運), 목주사마(睦州司馬), 수주자사(隨州刺史) 등을 역임했다.

시(詩)에 능했는데, 특히 오언시(五言詩)에 뛰어나 스스로 오언장성(五言長城)으로 일컬었다. 대표작으로 봉설숙부용산주인(逢雪宿芙蓉山主人), 송영철상인(送靈澈上人)이 있고, 문집으로 유수주집(劉隨州集)이 있다.

 

ㅇ 봉설숙부용산주인 : 유장경 봉설숙부용산(劉長卿 逢雪宿芙蓉山)

ㅇ 송영철상인 : 유장경 송영철상인(劉長卿 送靈澈上人)

 

 

(오늘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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