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산 오르는 길 전망대 옆에 한 그루 자귀나무가 6월부터 꽃을 피웠다. 자귀나무는 밤이 되면 작은 잎(小葉)이 쌍쌍이 겹치는 모습에서 금실 좋은 부부 또는 남녀 간의 은밀한 사랑을 연상해 합환목(合歡木), 합혼수(合婚樹), 야합수(夜合樹), 유정수(有情樹) 등으로 부르며, 한문은 좌기목(佐歸木)으로 표기한다. 정원수, 가로수 등 관상수(觀賞樹)로 사랑받는 이 나무 이름의 유래는 정확히 찾을 수 없으며, 밤이면 소엽이 겹쳐 부부의 만남을 의미하는 순우리말 짝에서 비롯하는 짝나무>짜기나무>자귀나무로 변천(變遷)되었다고 하며, 또 목수들이 사용하는 연장 ‘자귀’의 손잡이를 만드는데 이 나무를 사용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지만 이 또한 정확하지 않다.
식물의 이름은 주로 생김새나 쓰임새, 특징에 따라 이름을 붙이기에 이름만으로도 식물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것들이 많다.
할미꽃은 꽃이 땅을 굽어보고 흰 털이 있어서 진짜 허리가 구부러지고 머리까지 하얗게 센 할머니처럼 생겨 보이기기에 붙여졌으며, 한문표기는 백두옹(白頭翁), 노고초(老姑草)다.
참빗살나무는 참빗의 재료가 되었던 나무이고, 옻나무는 가구나 나무그릇에 옻칠을 하는 쓰임새에 따라 이름을 붙였으며, 신갈나무의 유래는 옛날에 나무꾼들이 산속에서 신고 가던 짚신이 떨어지면 신갈나무의 잎을 깔아 밟고 갔기에 ‘신을 간다’는 뜻에서 신갈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모든 잡초도 이름이 있듯이 그 유래를 찾아보면 쉽게 암기가 된다. 그냥 잡초가 아닌 이름을 불러 줄 때 한결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함께 살펴볼 한시는 조선 후기 위항 문학(委巷文學 : 은 조선 중기와 후기에 한성부에서 중인층이 주도한 문학 운동으로 여항 문학(閭巷文學)이라고도 한다.)의 발달에 지대한 끼친 영향은 구곡 최기남(龜谷 崔奇男) 선생의 시 한 수를 자서와 함께 알아보고자 한다.
한중용두시운(閑中用杜詩韻 : 한가하여 두보 시의 운자를 써서 짓다)

綠樹陰中黃鳥節(녹수음중황조절) 푸른 숲 그늘 속 꾀꼬리 지저대고
靑山影裡白茅家(청산영리백모가) 푸른 산 그림자 속에 조촐한 초가집.
閑來獨步蒼苔逕(한래독보창태경) 홀로 한가로이 이끼 낀 오솔길 걷노라니
雨後微香動草花(우후미향동초화) 비 내린 뒤 은은한 향기 풀꽃에서 풍기네.
묵헌(默軒) 최기남(崔奇男 158∼1671?)은 조선시대 구곡집(龜谷集)을 저술한 시인으로 본관은 천녕(川寧), 자는 영숙(英叔), 호는 구곡(龜谷) · 묵헌(默軒)이다. 저자의 생몰년은 「진휘속고(震彙續攷)」에 '기축생수동지팔십삼(己丑生壽同知八十三)'이라는 구절과 『구곡집』 본집 권 1의 「칠십음(七十吟)」에 부기된 동주(東州) 이민구(李敏求)의 차운시에 '여이득년구칠십(與爾得年俱七十)'의 구절에 의거하여 생년(生年)은 1589년(선조 22)으로, 몰년(沒年)은 1671년(현종 12)으로 추정된다.
그는 어려서부터 신익성(申翊聖)의 문하에 드나들며 신흠(申欽)의 눈에 띄어 시의 재능을 인정받았으며, 윤순지(尹順之)를 따라 일본에 가서 문명(文名)을 떨쳤다. 위항 시인들과 함께 육가잡영(六家雜詠)을 간행하였으며, 문하에 임준원(林俊元)·유찬홍(庾纘洪)·이득원(李得元) 등과 같은 위항 시인들을 많이 길러냈다. 저서로는 『구곡집(龜谷集)』·『졸옹전(拙翁傳)』이 있다.
최기남은 어려서부터 신익성(申翊聖)의 문하에 드나들었으며, 신익성의 아버지 신흠(申欽)의 눈에 띄어 시의 재능을 인정받았다. 시의 재능이 뛰어나 사대부들 사이에서도 이름을 날렸다.
1648년(인조 26)에는 윤순지(尹順之)를 따라 일본에 가서 문명(文名)을 떨쳤다. 성품이 깨끗하고 명예나 이익을 구하지 않아 가난한 생활을 했다.
최기남은 경전(經典)에 밝았고 『주역』을 좋아하여 직접 베껴서 탐독하였다. 63세 때에는 병이 나 누워 있으면서도 도연명을 따라 만시(輓詩 : 죽은 사람을 애도하며 지은 시) 3장을 지었다. 71세 때에는 병이 위독해지자 자신의 제문을 짓기도 했다. 현종 초에 실록감인원(實錄監印員)이 되어 『효종실록(孝宗實錄)』 편찬에 참여했다. 이때에 나이가 70여 세였다.
75세 때인 1660년(현종 1)에는 교유하던 위항시인(委巷詩人)인 정남수(鄭柟壽) · 남응침(南應琛) · 김효일(金孝一) · 최대립(崔大立) · 정예남(鄭禮男) 등과 함께 동인지 『육가잡영(六家雜詠)』을 간행했다. 이들 6명의 시인이 창작한 절구(絶句) · 고시(古詩) · 율시(律詩) · 오언(五言) · 칠언(七言) · 장단구(長短句) 등 각 체를 모아 실었기 때문에 ‘육가잡영(六家雜詠)’이라 이름하였다. 최기남은 위항 시인들의 스승으로 존경을 받았으며, 문하에 훌륭한 시인들을 많이 길러냈다.
최기남의 시는 당시(唐詩)에 가깝다는 평을 받았다. 이경석(李景奭)은 그의 율시(律詩)를 두보(杜甫)의 풍이라 하였다. 신익성은 “그의 고체시는 육조(六朝)의 것과 같다. 가행(歌行)은 당나라 시인들의 풍이다. 율조(律調)는 장경(長慶) 이전의 어투를 본받았다.”라고 평했다.
아들 최승태(崔承太)와 최승주(崔承胄)도 이름 있는 시인이었으며, 최기남의 문하에서 임준원(林俊元) · 유찬홍(庾纘洪) · 이득원(李得元) 등의 위항 문학시대를 이끌어갈 위항 시인이 많이 배출됐다. 그러므로 그가 조선 후기 위항 문학의 발달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고 하겠다.
저서로는 『구곡집(龜谷集)』 7권 2 책이 있다. 한시 외의 글은 자서전 격인 『졸옹전(拙翁傳)』 한 편 뿐이며 나머지는 440여 수의 시로 채워져 있다.
(자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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