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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매호 진화 해당(梅湖 陳澕 海棠)

이곳 영종도 주변의 제방길이나 공원에는 지금 막 피어나는 붉은색, 흰색 해당화가 쉽게 눈에 띈다.

해당화(海棠花)는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관목으로 흔히 매괴(玫瑰)라고 부르기도 한다. 꽃이 아름답고 특유의 향기가 있어 관상식물로 인기가 높고 1~1.5m의 크기로 자란다. 바닷가의 모래땅이나 산기슭에 군락을 형성하며 자라며, 7~9장의 잔잎으로 이루어진 깃털 모양의 꽃은 5~7월에 피고, 8월부터는 주홍색 열매를 맺는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고 뿌리는 당뇨병, 치통, 관절염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꽃은 진통과 지혈은 물론 향수의 원료로도 사용한다.

토양의 종류를 가리지 않지만 습도가 적당하고 비옥한 사질 양토에서 잘 자라며, 주로 해변의 모래 땅에서 자생한다. 노지에서 월동이 가능하며 전국 어디서나 재배할 수 있고 햇빛이 잘 드는 곳을 좋아하며 가뭄에 잘 견디고 염해(鹽害)에도 강하다.

 

♬♪~ 해당화 피고지는 섬마을에~ ♬♪ 노랫가락 처럼 친숙하게 다가오는 해당화는 바닷가나 섬마을에 고향에 둔 사람이라면 고향에 대한 그리운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고려말 문신으로 뛰어난 문장가이자 시인으로 이며 이인로(李仁老)와 더불어 절창(絶唱)으로 인정받은 매호 진화(梅湖 陳澕)의 해당(海棠) 시 한수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시는 해당화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붉고 화려한 꽃과 향기에 대한 은유(隱喩)를 더해 깊은 여운이 스며있는 명시로 기억되고 있다.

 

해당(海棠)

酒痕微微點玉腮(주흔미미점옥시) 아주 작은 술기운 흔적이 꽃잎에 남아서

暗香搖蕩隔林人(암향요탕격림인) 그 은은한 향기 숲 속의 사람을 사로잡았네.

紅杏紫桃無遠韻(홍행자도무원운) 익은 살구 자두 운치 멀리 퍼지지 않은데

一枝都占上園春(일지도점상원춘) 해당화 가지 하나로 봄 정원을 점령한다네.

 

매호 진화(梅湖 陳澕, 1180년대? ~ 생졸연대 미상) 선생은 고려 후기에, 정언(正言), 보궐, 우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본관은 여양(驪陽), 호는 매호(梅湖)이며 여양군(驪陽君) 진총후(陳寵厚)의 증손이다. 정중부(鄭仲夫)의 난 때에 문신을 보호해 주었던 참지정사(參知政事) · 판병부사(判兵部事) 진준(陳俊)의 손자이다. 병부상서 진광수(陳光脩)의 아들이며 진식(陳湜)의 아우이고, 진온(陳溫)의 형이다.

출생연도는 기록에 없으나 그의 문집에 있는 매호공소전(梅湖公小傳)에 의하면 1200년(신종 3)에 아직 혼인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대략 1180년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진화는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있었고 명종이 신하들에게 「소상팔경(瀟湘八景)」 시를 짓도록 하였을 때에 어린 나이로 장편을 지어 이인로(李仁老)와 더불어 절창(絶唱 : 아주 뛰어나게 잘 지은 시문(詩文))이라는 평을 받았다. 1198년 사마시에 수석으로 합격하였다. 1200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다음 해에 내시(內侍 : 고려 시대에, 근시(近侍) 및 숙위(宿衛)의 일을 맡아보던 벼슬아치)에 보직되였다. 1209년(희종 5) 학정(學正)으로 전직하였다. 1212년(강종 1)에 제과시험(制科試驗)에 참여하여 조서(詔書)를 짓는 일을 맡아보았다. 1213년에는 설화(舌禍)로 벼슬에서 물러났다가 다시 한원(翰苑)에 들어갔다.

1215년(고종 2)에 관각제공(館閣諸公)에게 부시(賦詩) 40 여운(韻)을 시험하였는데, 이규보(李奎報)가 수석을 차지하고 진화는 차석이었다. 서장관(書狀官)으로 금나라에 다녀온 뒤에 옥당(玉堂)으로 옮겨 지제고(知制誥 : 고려 시대, 임금의 조서(詔書), 교서(敎書) 등의 글을 지어 바치는 일을 맡은 벼슬)를 겸직하였다.

정언(正言 : 고려 시대에, 중서문하성에 속하여 간쟁(諫爭)과 봉박(封駁)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종 6품 낭사(郎舍) 벼슬)에서 보궐(補闕 : 고려 시대에 둔, 중서문하성의 정육품 벼슬. 좌ㆍ우 각 한 사람씩 있었는데, 16대 예종 때에 사간(司諫)으로 고쳤다.)을 거쳐 우사간(右司諫 : 고려 시대,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정육품 낭사직(郞舍職). 예종(睿宗) 때 우보궐(右補闕)을 고친 이름이다.)이 되어 지공주사(知公州事)에 보직되었다가 재직 중에 별세하였다. 「한림별곡(翰林別曲)」 제1장에서 “이정언 진한림 쌍운주필(李正言 陳翰林 雙韻走筆)”이라고 하였듯이 진화는 주필주(主走筆 : 글씨를 흘려서 빨리 씀)로 이름난 시인이다.

진화의 시는 현재 59수가 전하고 있다. 그 중 무신의 난 이후의 피폐(疲弊)한 농촌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도원가(桃源歌)」가 특히 유명하다. 금나라에 사신으로 가면서 지은 「사금통주구일(使金通州九日)」 · 「봉사입금(奉使入金)」 등의 시도 절창이다.

진화의 시는 관인(官人)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시와 자연을 소재로 한 정감을 표현한 시로 나뉜다. 자연을 묘사한 시에서는 산수 · 전원을 청담(淸淡)하게 표출하였다는 평을 얻고 있다.

허균(許筠)도 그의 시를 맑고 굳세어 읊을 만하다고 하였다. 스스로도 청나라를 위주로 시를 쓴다고 한 바가 있다. 그의 시에 대한 평가는 ‘청신(淸新)’ · ‘청려(淸麗)’ 등의 평어로 일관되어 있다.

1784년(정조 8)에 진화의 15세손 진후가 『동문선』 · 『동인시화』 · 『기아』 등에서 시작품을 찾아내어 『매호유고(梅湖遺稿)』를 간행하였다.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서 간행한 『고려명현집(高麗明賢集)』 2집과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간행한 『한국문집총간』 2집에 영인되어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2013년에 번역하였다.

 

(해당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