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물상지(玩物喪志)
완물상지(玩物喪志)의 뜻은 서경(書經)의 여오(旅獒)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은(殷) 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주(紂)는 성격이 포악하고 백성들에게 재화와 보물들을 거두어들여 호화로운 궁전을 세우고 유흥에 빠져 백성들의 원망이 높았다. 주(周) 나라의周) 서백(西伯 : 은을 섬긴 서쪽 여러 민족 가운데 우두머리) 창(昌)은 겉으로는 주를 섬기었으나 머지않아 은이 망할 것을 예견하고 주를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창이 죽고 발(發 : 무왕)이 뒤를 이어 기원전 1051년 드디어 은의 수도를 목표로 군사를 일으켰다. 이 보고를 받은 폭군 주는 감옥에 가득 찬 죄인들을 풀어 70만 대군을 편성하여, 주의 군사를 목야(牧野)에서 맞아 결전을 치르기로 하였으나, 이미 민심을 잃은 그에게 충성을 바치는 군사는 없었다. 순식간에 대오가 무너지고 쫓기던 주왕은 궁전에 스스로 불을 지르고 죽었다. 주나라를 세운 무왕은 건국의 공신들에게 각지에 제후로 봉하고 더불어 먼 나라에도 사신을 보내어 자기의 문덕과 무공을 전하고 신하로서 자신을 왕으로 섬길 것을 요구하였다. 어느 날 서방의 먼 곳에 자리 잡은 여(旅) 나라의 사신이 와서 큰 개 한 마리를 헌상했는데 무왕은 이 진기한 선물을 기쁘게 받고 사자(使者)에게 큰 선물을 내렸다. 이것을 본 태보(太保) 소공(召公) 이 글을 올려 다음과 같이 간언 했다.
완인상덕(玩人喪德 : 사람을 가지고 놀면 덕을 잃고)
완물상지(玩物喪志 : 물건을 가지고 놀면 뜻을 잃습니다.)
이 말을 듣고 무왕은 은나라의 멸망을 교훈 삼아 큰 개는 물론 헌상품을 모조리 제후와 공신들에게 나누어 주고 정치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정치인들이 뇌물에 넘어가 정치의 본뜻을 잃고 마는 경우가 많다.
무릇 큰 뜻을 품은 사람은 물욕(物慾)에 초월한 태도를 익혀야 함을 말하고 있다.
또한 완물상지(玩物喪志) 기록을 찾아보면 송유(宋儒) 사양좌(謝良佐)가 사서(史書)를 잘 외우며 박학다식한 것을 자부하자, 정명도(程明道)가 “잘 외우고 많이 알기만 하는 것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본심을 잃는 것과 같다(以記誦博識 爲玩物喪志)”고 경계한 내용이 정씨유서(程氏遺書) 3권에 수록되어 있으며, 작은 기예만 탐닉한 나머지 원대한 뜻을 잃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 눈에 보이는 물욕에 대한 집착이나 사소한 물건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편협된 지식은 한순간은 좋거나 인정받을 수 있지만, 본래 간진한 원대한 뜻과 본심을 잃어버릴 수 있음을 늘 경계하며, 교훈적 요소로 삼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