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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영주 부석사(榮州 浮石寺)

지난 8월 초 형제들과 하계 여행 중 영주 부석사(榮州 浮石寺)를 찾았다. 누님 3분 모두 불자이다 보니 여행지를 대표하는 사찰을 들르곤 하는데 영주는 수차 들렸지만 부석사(浮石寺)는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부석사는 봉황산(鳳凰山. 818m) 중턱에 위치한 전통사찰로 주차장에서 쉽게 접근 가능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으며 풍수학적으로도 최상 길지(吉地)에 속해있다.
부석사 뒤의 산이 마치 큰 새 한 마리가 좌우로 날개를 펼치고 그 가운데로 머리가 둥지를 향해 있는 모양새다. 이런 형국의 산은 봉황의 머리에 해당되는 혈처(穴處)에 무량수전(無量壽殿)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량수전에서 앞을 바라보는 전경은 완벽한 안산(案山)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다. 안산은 책상 앞에 앉아서 앞을 바라보는 산으로 높지 않으면서 봉긋하고 균형 잡힌 산이 여성의 치마폭처럼 아스라이 펼쳐지는 형국이다. 마치 할아버지가 책상에 앉아있는 손주를 바라보며 입신양명과 평안을 기원하는 모습으로 서로 마주 보며 혈처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최고의 풍수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샘이다.
 
무량수전 앞의 안양루(安養樓)는 1555년 이 자리에 있던 강운각(羌雲閣)이 화재로 소실되어, 1576년에 새로 지은 건축물이다. 하나의 건물에 누각과 문이라는 이중의 기능이 부여되어 있어 건물 아래층 전면에는 안양문(安養門) 건물 위층 후면에는 安養樓(안양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안양(安養)’이란 극락을 뜻하는 말로, 안양문은 극락에 이르는 입구를 상징하고, 안양문을 지나면 나오는 무량수전은 극락을 상징한다.
 
2022년 10월 31일 보물로 지정된 안양루 현판에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유명한 김병연(金炳淵)이 영주의 고찰 부석사를 방문했을 때, 안양루(安養樓)에 올라 주위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며 지은 한시가 있다.
 
여름의 절정에서 찾은 부석사에서 배롱나무 활짝핀 주변 풍광을 사진으로 담아보았으며, 부석사(浮石寺)라는 제목으로 쓴 김삿갓의 한시를 살펴보고자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부석사(浮石寺)     - 김병연(金炳淵 : 김삿갓. 金笠)

平生未暇踏名區(평생미가답명구)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白首今登安養樓(백수금등안양루) 백수가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네.
江山似畵東南列(강산사화동남열)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있고
天地如萍日夜浮(천지여평일야부) 천지는 부평 같아 밤낮으로 떠 있구나.
風塵萬事忽忽馬(풍진만사홀홀마)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온 듯
宇宙一身泛泛鳧(우주일신범범부) 우주 간에 내 한 몸이 오리처럼 헤엄치네.
百年幾得看勝景(백년기득간승경) 백 년 동안 몇 번이나 이런 경치 구경할까
歲月無情老丈夫(세월무정노장부) 세월은 무정하다 나는 벌써 늙어있네.

 
(부석사 전경)

무량수전에서 바라본 부석사 전경
부석사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북지리)
천왕문
관음전(觀音殿)
불사리탑이건비(佛舍利塔移建碑)로 표시되어있다.
봉황산부석사 현판
범종각
장경각(藏經閣)
부석사 안양문
부석사 3층석탑(浮石寺三層石塔) :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석조 불탑. 보물. 내용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5.26m.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쌓은 전형적인 신라석탑으로서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옆의 높은 대지 위에 세워져 있다.
부석사 선묘각(浮石寺 善妙閣)
안양루(安養樓)
배롱나무(목백일홍, 자미화)가 만개하여 사찰과 조화로움을 더한다.
석등과 안양루
무량수전(無量壽殿)은 몇 안 남은 고려시대의 건축물로 고려시대 중기의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안동 봉정사 극락전(鳳停寺 極樂殿, 국보 제15호)과 서로 누가 더 오래되었나로 엎치락 뒤치락 하고 있는데, 무량수전이 언제 건립됐는지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중수 기록을 통해 추정하고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1376년에 진각국사(眞覺國師) 천희(千熙)가 중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전통 건물은 보통 짓고 나서 100~150년 후에 수리하기 때문에 건립시기는 이보다 약 100년 정도 이를 것으로 본다. 봉정사 극락전은 1363년에 중수 했다는 기록이 있어 일반적으로는 봉정사 극락전이 조금 더 오래되었다고 여겨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정만 하는 것이다. 봉정사 극락전이 한국 건축의 구조미(構造美)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면, 부석사의 무량수전은 한국 건축의 형태, 비례미(比例美)를 잘 보여준다고 평가받는다. 순수하게 건축물로서 완성도를 본다면 무량수전이 더 급(級)이 높고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확실하게 창건연대가 정확히 밝혀진 것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은 예산 수덕사(禮山 修德寺) 대웅전(국보 제49호)이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1962년 국보 제18호로 지정되었다.(무량수전이 보수중이라 부석사 홈피 사전을 가져왔다.)
무량수전 현판(공민왕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榮州 浮石寺 無量壽殿 앞 石燈)은 신라의 석등으로 대한민국 국보 제1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높이는 2.97m이다. 8각을 기본형으로 하며 화강암으로 만든 것이다. 화려하고 아름다워 신라시대의 석등 가운데 최고로 꼽는다
취현암(醉玄庵)은 조사당 동쪽 바로 옆에 있다. 1997년도에 복원되어 2002년까지 선원으로 활용되다 현재 부석사 산내암자로서 쓰이고 있다.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 : 삼국유사에 있는 설화를 보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善妙)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서 줄곧 의상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 앉았다고 전한다.
범종루(梵鍾樓)에 걸려있는 목어와 운판.  불전사물(佛殿四物)은 범종(梵鍾),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板)을 말한다. 목어(木魚) 나무로 만든 물고기로 복부를 파내고 막대를 사용하여 소리를 냄으로서 물 속에 사는 모든 중생들을 제도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운판(雲板)은 구름 모양으로 만들어진 철판이나 청동판으로 공중을 날아 다니는 중생을 제도하고 허공을 떠도는 영혼을 천도(遷度)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선종(禪宗)에서 재당(齋堂)이나 부엌에 달고 대중에게 끼니 때를 알리기 위하여 울리는 도구로 청동으로 된 판을 구름모양으로 만든 것으로 형상화하여 운판(雲板)이란 이름으로 전해진다. 비를 머금은 구름 모양에 주술적인 의미를 담아 선종계통의 사찰에서는 화재를 막는 의미로 부엌 앞에 걸어 두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