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지에 홀로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밤이 되면 책상머리에 늘 자리 잡고 있는 지필묵이 나를 불러들여 글을 쓰게 된다. 내가 올린 글은 많은 시간을 두고 정성스레 쓰기 보단 가벼운 마음으로 그냥 쓰는 것이다. 저녁 반주 후 쓰고자 하는 욕망이 일어나면 원하는 필체가 나오고 억지로 쓰다 보면 맘에 들지 않은 글이 되곤 한다. 이 또한 시간의 흔적이라 글씨보다 글 내용에 치중하여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도연명 역시 현실은 타향이고 마음은 고향에 있어 시 한 수로 외로운 객의 마음을 달래보고자 했으리라.
잡시(雜詩 其九.)
遙遙從羈役(요요종기역) 멀고 먼 객지를 떠돌며 벼슬살이 하노라니
一心處兩端(일심처양단) 마음은 타향과 고향 두 끝에 있네
掩淚泛東逝(엄루범동서) 눈물을 가리고 배를 타고 동쪽으로 떠나며
順流追時遷(순류추시천) 흐르는 물결 따라 변해가는 시간을 쫒는다
日沒星與昴(일몰성여묘) 해는 *성수(星宿)와 묘수(昴宿) 쪽으로 지고
勢翳西山巔(세예서산전) 그 기세가 서산마루에 깃드네
蕭條隔天涯(소조격천애) 쓸쓸히 하늘 끝에 떨어져 있노라니
惆悵念常餐(추창념상찬) 슬프게도 늘 집에서 먹던 밥이 생각나는구나
慷慨思南歸(강개사남귀) 슬프고 한탄스러워 남쪽으로 돌아갈 생각을 해도
路遐無由緣(노하무유연) 길은 멀고 돌아갈 도리가 없구나
關梁難虧替(관량난류체) 관문과 다리 부서져 고치기 어려우니
絕音寄斯篇(절음기사편) 끊어졌던 소식 이 시에 부치노라
*성수(星宿)와 묘수(昴宿) : 중국 춘추전국시대 천문학자들이 하늘의 별을 28수(宿)로 나누고 동쪽의 7수를 성수(星宿)라 하고, 서쪽의 서방 백호자리 7수 중 7개의 별로 구성된 것을 묘수(昴宿)라 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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