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게 반복되는 일상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다. 원룸의 작은 공간에 거처하다 보니 살림살이도 단출하여 책상에 앉으면 게으름에 한 페이지가 더디게 넘겨지는 책 몇 권, 지필묵이 눈에 들어온다. 자연스레 먹물이 마르지 않은 벼루옆에 화선지를 깔판(천)위에 올려놓고 붓을 잡고 원하는 문구를 쓰게 되는데 화선지는 주로 송지(松紙:書練紙)를 사용한다. 화선지 전지(70Cm x 136Cm)를 반으로 자른 반절지(半切紙)에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은 후 즉시 폐기하고 있다.
졸필을 남에게 내보인다는 것은 심히 부끄러운 일이나 글씨보다 내용이 중요하기에 창피함을 무릅쓰면서 흔적을 남겨가고 있다. 글은 자신이 쓰고 싶을 때, 술 한잔 건~하게 걸쳤을 때, 비 눈 내리는 밤에는 붓을 잡은 사람만이 느끼는 흥취가 생겨나기 때문이리라.
연이어 하서(河西)선생의 백련초해 자서와 함께 이맘때 쯤 눈길이 머무는 사진 몇 장을 올려보았다.
김인후 백련초해 39~42(金麟厚 百聯抄解 其三十九. ~ 其四十二.)
山含落照屛間畵(산함락조병간화) 산이 지는 노을 머금으니 병풍 속의 그림이요
水泛殘花鏡裏春(수범잔화경리춘) 강에 꽃잎들이 두둥실 떠가니 거울 속의 봄이라.
春前有雨花開早(춘전유우화개조) 봄이 오기 전에 비가 내리니 꽃이 일찍 피고
秋後無霜葉落遲(추후무상엽락지) 가을이 지나도 서리가 없으니 낙엽이 아직 지지 않는구나.
野色靑黃禾半熟(야색청황화반숙) 들 빛이 푸르고 누른 것은 벼가 반만 익었기 때문이요
雲容黑白雨初晴(운용흑백우초청) 구름 빛이 검고 흰 것은 이제 막 비가 그쳤기 때문이네.
柳爲翠幕鶯爲客(유위취막앵위객) 버들잎이 푸른 장막을 이루니 꾀꼬리는 손님으로 오고
花作紅房蝶作郞(화작홍방접작랑) 꽃이 신방을 이루니 나비가 신랑으로 오도다.
김인후 백련초해 43~46(金麟厚 百聯抄解 其四十三. ~ 其四十六.)
白鷺下田千點雪(백로하전천점설) 흰 해오라기 떼지어 밭에 내려앉으니 수 천 점의 눈송이요
黃鶯上樹一枝金(황앵상수일지금) 꾀꼬리가 나무 위에서 나니 나뭇가지에 달린 한 개의 금덩이로다.
千竿碧立依林竹(천간벽립의림죽) 수없이 푸르게 서 있는 것은 수풀을 의지한 대나무요
一點黃飛透樹鶯(일점황비투수앵) 한 점 노랗게 날아다니는 것은 나무 사이의 꾀꼬리다.
白雲斷處見明月(백운단처견명월) 흰 구름이 사라지니 하늘에는 밝은 달이 보이고
黃葉落時聞擣衣(황엽락시문도의) 노란 단풍잎이 떨어지니 마을에선 다듬이질 소리가 들리네.
白躑躅交紅躑躅(백척촉교홍척촉) 흰 철쭉은 붉은 철쭉과 섞여있고
黃薔薇對紫薔薇(황장미대자장미) 노란 장미는 붉은 장미와 마주보고 피었구나.
(눈길이 머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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